제1부 고대의 음악 1. 음악의 기원
음악의 기원
최초의 음악은 기록되지 못한 채 영원히 사라져버렸지만, 음악이 아득히 먼 옛날부터 존재했다는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있다. 고고학자들은 고대문명에 갖가지 형태의 음악이 있었다는 것을 찾아냈고, 인류학자들도 대부분의 원시 부족의 문화에서 음악이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발견했다. 언제 어디에서, 왜 어떻게 음악이 기원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동양이나 서양문화권 모두 음악의 신성한 기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여러 시인들이 음악을 신들의 발명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대신(大神)인 제우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노래하거나 시로 남기고자 했으나, 이를 담당할 신이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기간테스(인간의 얼굴과 용의 몸을 가진 거인족)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승전가를 만들고 싶었던 제우스는 이 전쟁에 대해서 낱낱이 기억하고 있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아홉 밤을 계속해서 동침한 끝에 아홉 명의 딸을 낳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아홉 자매는 문학, 예술 또는 과학의 특정 영역을 관장하는 여신들로, 그리스 어로는 무사(Mousa), 영어로는 뮤즈(Muse)라고 부른다. 아홉 자매 중 첫째인 클리오는 역사, 둘째 우라니아는 천문학, 셋째 멜포메네는 비극, 넷째 탈리아는 희극, 다섯째 테르프시코레는 합창단의 춤과 노래, 여섯째 폴리힘니아는 찬미가, 무용과 무언극, 일곱째 에라토는 연애시, 여덟째 에우테르페는 서정시, 막내이자 뮤즈들의 대표격인 칼리오페(Calliope)는 영웅시와 현악기를 각기 주재했다.
이들 뮤즈가 관장하는 행위, 예술 또는 기술(techne)을 의미하는 무지케(musike)에서 뮤직(music, 음악)이라는 말이 유래되었고, 뮤즈들이 사는 신전인 무사이온(mousaion, 라틴 어로는 musaeum)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뜻하는 영어 뮤지엄(museum)이 유래되었다. 뮤즈들의 후견인은 태양의 신 아폴론(Apollo)으로 음악의 신으로도 불린다. 아폴론은 한때 칼리오페를 사랑한 적이 있어, 그때 낳은 아들이 최고의 명가수이자 리라 연주자인 오르페오이다.
그리스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악기인 아울로스와 리라의 탄생에도 각기 전해지는 신화가 있다.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헤르메스는 전령신이자 통행·상업·발명·간계·도둑질의 신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발명에 특출한 재주가 있던 헤르메스는 거북의 등껍질과 아폴론에게서 훔친 황소의 힘줄로 악기를 만들었다. 거북의 등껍질의 각 끝에 아홉 개의 구멍을 뚫어 황소 힘줄을 걸었는데, 현이 아홉 줄인 것은 아홉 명의 뮤즈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리라였고, 헤르메스는 이 리라를 아폴론에게 바치고 그 답례로 카두케우스 지팡이를 받았다. 이후 리라는 아폴론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악기가 되었다.
수메르의 리라 연주자와 여성 가수.기원전 2600년경.
아울로스는 지혜·풍요·공예·전술의 신인 아테나가 발명했다고 한다. 페르세우스가 아테나 여신과 헤르메스에게서 각각 빌린 방패와 날개 돋친 구두의 도움으로 메두사의 머리를 베었을 때, 메두사의 자매인 에우리알레는 혈육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했다. 이 모습을 본 아테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처절한 인상을 재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울로스라고 한다. 아울로스를 즐겨 연주하던 아테나는 어느 날 자신을 지켜보던 신들의 여왕 헤라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비웃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아울로스를 부는 자신의 모습을 호숫가의 물위에 비추어 본다. 결국 그들이 비웃은 것은 연주할 때 일그러지는 얼굴 때문임을 알고는 화가 나서 아울로스를 인간세계로 집어던졌다고 한다. 아울로스는 이처럼 인간의 내면에 흐르는 처절한 감정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의 제전에 사용하는 악기로 지정되어 황홀하고 격정적인 분위기를 고양하는 데 사용되었다.
고대인들에게 음악은 처음에는 주술적인 것이었다. 그리스 어로 ‘노래하다’라는 말에 ‘끌다’ ‘마술로 고치다’의 의미도 있는 것은 음악이 본래 주술적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들은 음악이 병을 고칠 수도 있고, 마음을 정화시킬 수도 있으며, 기적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신, 동물, 심지어는 숲과 바위까지도 음악으로 매혹시켰다는 오르페오의 신화와, 리라의 명수인 암피온(제우스와 테베의 여왕인 안티오페의 아들)이 쌍둥이 형제 제투스와 함께 테베(Thebes)의 성벽을 쌓다가 리라를 연주하자 돌들이 저절로 움직여 성벽이 완성되었다는 신화 등이 음악의 마법적 효과를 믿는 원시적 음악관의 일례를 보여준다. 고대인들은 정신병이나 간질병 같은 병은 타악기의 반복되는 타주 소리에 맞추어 심한 흥분으로 이끌려지고, 그 다음에는 깊은 수면에 빠져들면서 병든 정신이 빠져나간다고 믿었다.
다윗의 하프 연주로 사울의 광증이 진정되고, 나팔 소리에 여리고의 대리석이 부서진다는 성서 속의 이야기, 중세 동화의 무용병 이야기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 등, 음악이 가지는 기적적인 힘에 대한 믿음은 현대 정신병학까지 계속되어오고 있다. 즉, 현대의 ‘음악치료법’도 이 마법의 음악에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신화적 기원이 아닌 음악의 실제적 기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용할 수 있는 이론들이 몇 가지 있다. 원시 종족이 이웃과 멀리 소통하기 위해서 성악적으로 소리를 내거나 원시 형태의 타악기와 동물 뿔을 사용하면서, 그 소리들이 귀를 즐겁게 한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것이 음악의 기원이 되었을 것으로 보는 이론이 있다. 또는 두려움, 노여움, 고통, 기쁨들을 표현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내는 소리에서 성악적 표현으로 발전되었을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또 다른 이론은 힘든 일을 하거나 춤을 추는 데 어떤 리듬적 소리로 반주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충동을 받았을 것이고, 점차적으로 음악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고대문명에서 사용하던 악기들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음악 유산은 극히 빈약하며, 이들의 대부분은 단편적이고 해독하기 어렵다. 가장 오래 된 악기는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된 맘모스 뼈로 만든 악기들로 여러 종류가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18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75년에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지이던 수메르(Sumer)와 에블라(Eblaite)의 설형문자 점토판이 15,000개 이상 발굴되었다. 에블라는 기원전 2400년에 번영하다가 기원전 2000년경에 대학살에 의해서 멸망한 도시국가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는 이들 점토판을 통해서 보존될 수 있었는데, 이중 직업 목록이 적혀 있는 한 점토판을 통해 그 시대에 이미 직업적인 음악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음악으로 가장 고대의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기원전 1400년경 극동지역의 우가리트(Ugarit, 현재의 Ras-Shamra 자리에 있다)의 고대문명지에서 발굴된 노래이다. 후르리 언어(Hurrian)로 되어 있는 이 노래는 달의 신의 부인인 니칼(Nikal)에 대한 찬미가로, 점토판의 양면에 설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점토판의 갈라진 틈 때문에 가사의 일부분은 훼손되었지만, 연주에 대한 지시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연관목차
서양음악사 100장면 6/118
- 서양음악사 100장면
- 고대의 음악에서 바로크 음악까지
- 계몽주의 음악에서 현대음악까지
출처
제공처 정보
서양음악사 100장면 2002. 7. 20. 책보러가기
<서양음악사 100장면> 시리즈 제2권. 18세기 초부터 20세까지의 고전주의-낭만주의-현대음악을 다루었다. 250여 년에 걸쳐 서양음악사에서 일어난 다양하고 중요한 사건들을 작곡가, 음악 장...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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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을미
박을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졸업.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석사 및 박사(음악학). 현재 부산대학교 교수. 주요 논문 및 저서로는 <중세 서양음악의 기보발전사> <트루바두르-트루베르 음악의 리듬이론 : 모드리듬론과 자유...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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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용환
서울대 음대 기악과 졸업.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 음악학 석사(MA) 및 박사(Ph. D). 독일 헤센 국립 음악 아카이브 연구원 역임. 문체부 남북문화분야 전략연구팀 상임연구위원 역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연구위원...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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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처 가람기획
[네이버 지식백과] 음악의 기원 (서양음악사 100장면, 2002. 7. 20., 박을미, 김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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